이 책도 유명한 책인데요
토마 피케티 저자가 쓴
21세기 자본이라는 책입니다
경제 관련 책인데요 자본에 관한 이야기 입니다
책 21세기 자본 리뷰 입니다
[목차]
[책 리뷰 모음]
평점 5/5점
마르크스의 자본론은 그 자체로 혁명이었다. 레닌의 제국주의 식민론이나 그람시의 문화권력론도 자본주의의 모순을 극복하려는 투쟁의 양식이었다. 모든 혁명은 실패하고 자본은 인류의 정신과 몸을 지배하고 적이 없는 전장에서 자신을 따르던 무리들을 하나 하나 잡아 먹고 있다. 온갖 쾌락과 향수를 음미하면서.
토마 피케티의 이번 역작은 자본수익율<R>은 언제나 생산이율<G>를 앞선다는 명제로 극도의 불평등이 야기하는 디스토피아적 세계관을 누진적 자본세라는 이름으로 간신히 바꿔보려하지만 그는 안정된 지위와 명예를 가짐으로 절박한 현체제를 극복할 길 자체를 몽상적으로 만들었다. 피로 이루어진 민주주의는 자본의 뿌리로 부패와 타락의 잎사귀를 피워 올리니 몇개의 과실이 극장이나 광장에서 희미한 빛으로 세상을 보여주는데 만족할 뿐이라고는 차마 말하지 않는다.
피케티는 발자크등 소설가들의 입을 빌어 자본의 속성이나 행동양식을 인간의 얼굴로 보여주지만 돈에 자유로운 인간은 죽었거나 의식이 미친 병자이거나 뿐이니 희망은 돈의 분배가 아니라 돈의 자본의 속성이 사막을 이루는 하나의 모래이거나 허공에 흩날리는 먼지라는 진리에는 도달하지 않는다. 인간은 그렇게 사막을 이루고 허공을 이룬다.
식물인간이 최고의 부자라면 투명인간이 자본가를 지배하는 현 체제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마르크스의 유령들이 세상을 떠돌때 시인이나 혁명가들은 세상을 뒤집으려 몸부림쳤지만 인간 그 자체를 바꿔놓는데 실패하니 그 숙명이 끈질기게 우리의 미래로 넘어간다. 최근작인 작가 최인석의 <강철 무지개> 는 청춘을 바친 운동권의 미래의 역사를 보여주는 포기할 수없는 사랑의 구체적 표현인지도 모른다.
자본의 모순은 그 자체에 있다는 마르크스의 끈질긴 고투와 레닌의 제국주의 타파론은 모든 혁명가들의 꿈이었고 삶 그 자체였던 그 시절이 언제였던가. 피케티는 방대한 역사적 자료와 실증으로 부의 이동과 형성을 증거하지만 도대체 그 누가 눈 하나 깜짝이나 하겠는가.
부자지간에도 남아야 거래한다는데. 부처도 시앗보면 돌아앉는다는데. 사랑은 아무나 하나.
차를 몰고가는데 이제 초등 4학년 딸아이가 묻는다.
아빠. 돈이 중요해? 동물이 중요해?
둘다 중요하지.
아빠. 그런데 사람이 없으면 돈도 필요없쟎아?
......... .
창밖을 보니 텅 빈 들판에 간신히 바람만 보였습니다.
평점 5/5점
경제학과 역사학의 통섭이 만들어낸 현시대의 역작
명불허전이었다. 두께가 상당해 처음엔 부담스러웠지만 의외로 술술 읽히면서도 명징한 시사점을 제기하며 커다란 파문을 던져주었다.
그의 무기는 장하준과 마찬가지로 역사적 실례 및 시계열 추이였다. 1차 세계대전 직전이 역사상 불평등이 최대화된 시점이었으며, 1980년대 신자유주의의 대두 이후 지속적으로 불평등화가 커지고 있다는 수치적 사실은 99%를 위한 Occupy 운동을 적확하게 뒷바침하는 것이었다.
양차 세계대전의 비극이 자산의 대규모 파괴를 가져와 불평등성을 해소함으로서 전후 30년의 경제 기적을 가져왔다는 것은 시대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었다.
2015년 노벨 경제학상 - 알고보니 노벨 경제학상은 짝퉁이었고 다른 부문과는 선정과정이 달랐다. - 을 기대해 본다.
사회적 차별은 오직 공익에 바탕을 둘 때만 가능하다. -- 1789년 프랑스혁명 당시 인간과 시민의 권리에 관한 선언 1조, 7p
우리가 자본주의에 대한 통제력을 되찾으려면 민주주의에 모든 것을 걸어야 한다. -- 691p
21세기의 세계화된 세습자본주의에 대한 효과적인 규제는 오직 지역적인 통치적 통합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 692p
평점 5/5점
이 책을 읽고난 뒤, 이 책의 내용이 사실이 아닐 것이라고 믿고 싶다. 자본소득, 즉 불로소득률인 자본소득률이 경제성장률보다 높다는 점, 소득과 부의 불평등은 더욱 심해지고 있다는 점이 그렇다. 지금까지는 말로만 불평등해지다고 들었지만, 책에서는 실제 데이터를 바탕으로 불평등의 수준을 증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피케티 현상이 일어날 정도로 책의 내용이 큰 관심을 끌고 있다. 이전까지는 아마 그럴 것이다라고만 믿고 있던 부의 불평등을 구체적인 데이터를 통해서 보여주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부의 불평등이 심해지고 있다는 현실에서 눈을 돌릴 수는 없을 것이다. 이런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서 피케티는 누진적인 글로벌 자본세를 해결방안으로 들고 나왔다. 피케티의 이런 해결책이 21세기 이내에 실현될 수 있을지 궁금해진다. 또한 이런 대안이 사람들에게 줄 영향을 지켜보고 싶다.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부의 불평등, 그리고 앞으로의 방향에 대해 고민하게 해보는 책이 되었으면 한다.
평점 5/5점
실증자료에 따르면, 어느 시대 어느 사회든 하위50%는 거의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으며, 상위10%가 60%이상을 소유한다. 이런 객관적 사실에도 불구하고 경제권력은 '평등은 모든 것을 정체시킨다'는 논리하에 무한경쟁과 불평등을 정당화하면서 특권을 유지하고, 다수를 차지하는 자식에게 물려줄게 없는 하위소득계층이 상위0.1%를 대변하는 보수정당을 지지해 오는 사이, "상위10%가 전체 부의 90%를 상위1%가 전체 부의 50%"를 차지하는 19세기로 회귀하고 있다.
자본이 부의 불평등을 초래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자본수익율이 경제성장률보다 크기 때문이다" 즉, 자본은 생산증가보다 더 빠르게 스스로를 재생산한다. 이는 자본주의의 구조적 모순이다.
소득은 크게 자본소득과 근로소득으로 구성된다. 그리고 단순히 자본을 소유한데서 나오는 자본소득이 개인의 능력과 노력에 따른 근로소득보다 월등히 크다. 문제는 인구 및 경제성장이 둔화되면 자본수익률이 성장률보다 높아지면서 필연적으로 과거에 축적된 불평등이 더 커진다는 점이다. 돈은 스스로를 재생산한다. 또한 자본에도 규모의 경제가 적용되므로 최상위층으로 부의 재분배가 가속화 된다. 이 문제는 시장에서 경쟁을 강롸한다고 해결되지 않는다.(무제한적인 경쟁이 능력 위주의 사회를 만든다는 근거는 없다) 지금까지 역사는 그 반대임을 보여준다.
역사적으로 이러한 경제적 불평등을 조금이나마 축소시킨건 민주주의도 아니고 자유시장경제도 아닌, 두 차례의 세계대전이었다. 전쟁으로 인한 정치적 충격이 시장에 개입해서 전후의 경제성장 과실을 나누도록 강제했기 때문이다. 높은 누진세, 최저임금인상, 임대료규제 등.
불평등을 축소해야하는 사회적 합의는 "사회적 차별은 오직 공익에 바탕을 둘 때만 가능하다"는 프랑스 인권선언이고, 이론적 근거는 "사회경제적 불평등은 모든 이에게 이익이 될 때만, 특히 가장 불리한 입장에 있는 사람에게 이익이 될 때에난 정당화될 수 있다"는 존 롤스의 정의론에서 찾을 수 있다. 따라서 민주주의가 자본주의를 통제해야지 그 반대는 있을 수 없다.
피케티는 현재의 저성장 환경에서 '자본에 대한 누진세'가 가장 효과적으로 부의 불평등 격차를 줄이는 방법이라고 주장한다. (여담으로, 워렌 버핏같은 부자가 부자에게 세금을 부과하라고 하는 것은 그가 도덕적이어서가 아니라 부가 극심하게 불평등한 사회에서는 장기적으로 자신의 부가 커질 수 없다는 걸 알만큼 똑똑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저임금노동자, 비정규직, 노동유연성비율이 OECD 국가 중 1위인 우리나라에서는 헛된 희망이라는 생각이 든다. (자본소득에 대한 보편적으로 수용가능하고 평등하게 적용되는 누진세가 불가능하다면, 소득불평등을 줄이는 방법밖에 없고 그것은 교육에 투자하는 것이다. 그런의미에서 교육은 공공재라고 볼 수 있다)
"우리는 99퍼센트다"라는 월스트리트 시위의 구호는 남의 일이 아니다. 자본이 자본을 무제한으로 증식하고, 정치권력이 경제권력과 결탁해서 최상위 부유층의 부를 보호하기 위해 새로운 법률을 계속 만들어 내는 세습금융자본주의체제에서 승자독식의 극단적 양극화사회는 필연적이다.
평점 4/5점
피케티, 피케티 하는 말을 자주 듣던 중, 한번은 읽어야겠다 싶어서 구입하여 읽은 책.
꽤 두꺼운 이 책은, 지은이는 전문적인 지식이 없는 이들도 읽을 수 있도록 썼다고는 하지만, 아무래도 어렵게 느껴지는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
다른 것보다, 자본주의가 앞으로도 그리 일반 민중에 속하는 내 편이라고 하기에는 어려운 방향으로 진행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더구나 인구 변화가 급격히 진행될 우리나라에서 상속이 젊은이들에게 더 영향을 미칠 것 같으니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잘 살아야겠구나, 그리고 잘 가르쳐야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꾸역꾸역 전부 다 읽긴 했지만, 사실 그만큼 잘 이해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사회 변화의 방향에 대해 고민하는 이같은 책을 생각나는대로 읽고, 고민하고, 인생의 방향을 정하는데 참고하며 살아야겠다.